남양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지 산책
소개
천마산을 중심으로 축령산, 불암산, 운길산이 둘러싸고 있고, 남한강과 북한강을 끼고 있어 빼어난 경치를 타고난 행운의 도시, 남양주시. 이 곳에 가면 느릿느릿 살아가는 삶의 여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비룡로 1635
코스 지도
몽골문화촌은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에 위치하며, 1998년 남양주시와 몽골 울란바타르시의 우호 협력 협약을 바탕으로 2000년 4월 개관했다. 총면적 6만 2,479㎡ 규모의 공간으로 조성됐다. 몽골 전통악기 연주와 마상 공연 등 다양한 전통 예술을 선보이는 국내 유일의 몽골 민속 예술 상설 공연장이다. 전시관에는 전통의상, 악기, 생활용품 등 약 800여 점이 전시돼 있어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몽골의 종교, 의복, 생활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관람은 무료이다. 야외에는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와 돌무덤이 설치돼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관람객은 전통가옥 내부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현재 남양주시는 2025년 상반기 재개장을 목표로 문화촌을 전면 재정비하고 있다. 리모델링은 실내외 공연장, 글램핑 카페, 미디어아트 영상관, 디지털 체험관 등 4개 섹터로 나뉘어 진행 중이다. 재정비 후에는 문화와 여가, 체험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운영될 예정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 교종본찰 봉선사는 교종 수사찰의 종풍과 선종사찰의 법맥을 그대로 전승하고 있는 대가람이다. 서기 969년 고려 광종 20년에 법인 국사가 창건하고 운악사라고 했다. 그 후 서기 1469년 조선 예종 1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을 이산에 모시고는 광릉이라 하고, 이어 당사를 초창하여 선왕의 능침의 명 복을 비는 자복사로 삼고 봉선사라 했다. 봉선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 때 거듭 병화를 입는 비운을 겪는다. 낭혜대사(1539년)의 뒤를 이어 계민선사(1637년)가 중건하고, 1749년과 1848년에 다시 중수해 고아하고 장중한 대찰의 면모를 되찾았으나 오늘의 봉선사는 1960년 무렵부터 재건불사를 일으킨 가람의 모습이다. 봉선사에서는 매년 여름에 연꽃을 소재로 불교문화 축제인 봉선사연꽃축제가 열린다. 1,000여 평에 달하는 넓은 연꽃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연꽃이 만개할 때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산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한 정취와 문화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소통과 화합의 불교문화를 구현하기 위해 매년 이어지고 있다.
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 씨의 능이다. 1521년(중종 16) 정순왕후가 노산군부인(魯山君夫人)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묘는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댁 해주 정 씨의 집안 묘역인 지금의 자리에 조성하였고, 해주 정 씨 집안에서 제사도 지내주었다. 1698년(숙종 24) 정순왕후로 복위되면서 능의 이름을 사릉이라 하고 묘를 왕릉 제도에 맞게 다시 조성하였다. 이때 사릉 주변에 있던 해주 정 씨 묘역을 옮기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숙종의 명으로 묘들을 그대로 두어 현재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사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을 세웠고, 석양과 석호는 1쌍씩 배치하였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수라간, 수복방, 홍살문 등이 있고, 비각 안에는 ‘조선국 정순왕후 사릉(朝鮮國 定順王后 思陵)’이라고 새겨진 표석이 있다.
홍릉은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과 그의 부인인 명성황후의 무덤이다. 고종은 재위기간 중에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지 못하고, 내부에서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을 겪었다.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비운의 왕비이다. 명성황후의 무덤은 처음에 청량리에 있었으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 하여 고종의 무덤에 합장하였다. 광무 원년(1897) 대한제국 선포로 홍릉은 지금까지의 무덤 제도와 다르게 명나라 태조 효릉의 무덤 제도와 조선왕릉의 제도를 결합하였다. 유릉은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의 무덤이다. 조선왕릉 중 한 봉우리에 3개의 방을 만든 동봉삼실릉은 유릉뿐이다. 홍릉과 유릉은 철종 이전의 무덤과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종을 황제로 칭하게 됨으로 제릉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서 석물의 규모나 종류가 달라졌다. 2개의 무덤을 하나로 묶기 위해 외곽으로 담장을 설치하였으며, 양릉 중간에 돌로 만든 연못을 두었다.
코스 구성
몽골문화촌은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에 위치하며, 1998년 남양주시와 몽골 울란바타르시의 우호 협력 협약을 바탕으로 2000년 4월 개관했다. 총면적 6만 2,479㎡ 규모의 공간으로 조성됐다. 몽골 전통악기 연주와 마상 공연 등 다양한 전통 예술을 선보이는 국내 유일의 몽골 민속 예술 상설 공연장이다. 전시관에는 전통의상, 악기, 생활용품 등 약 800여 점이 전시돼 있어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몽골의 종교, 의복, 생활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관람은 무료이다. 야외에는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와 돌무덤이 설치돼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관람객은 전통가옥 내부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현재 남양주시는 2025년 상반기 재개장을 목표로 문화촌을 전면 재정비하고 있다. 리모델링은 실내외 공연장, 글램핑 카페, 미디어아트 영상관, 디지털 체험관 등 4개 섹터로 나뉘어 진행 중이다. 재정비 후에는 문화와 여가, 체험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운영될 예정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 교종본찰 봉선사는 교종 수사찰의 종풍과 선종사찰의 법맥을 그대로 전승하고 있는 대가람이다. 서기 969년 고려 광종 20년에 법인 국사가 창건하고 운악사라고 했다. 그 후 서기 1469년 조선 예종 1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을 이산에 모시고는 광릉이라 하고, 이어 당사를 초창하여 선왕의 능침의 명 복을 비는 자복사로 삼고 봉선사라 했다. 봉선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 때 거듭 병화를 입는 비운을 겪는다. 낭혜대사(1539년)의 뒤를 이어 계민선사(1637년)가 중건하고, 1749년과 1848년에 다시 중수해 고아하고 장중한 대찰의 면모를 되찾았으나 오늘의 봉선사는 1960년 무렵부터 재건불사를 일으킨 가람의 모습이다. 봉선사에서는 매년 여름에 연꽃을 소재로 불교문화 축제인 봉선사연꽃축제가 열린다. 1,000여 평에 달하는 넓은 연꽃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연꽃이 만개할 때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산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한 정취와 문화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소통과 화합의 불교문화를 구현하기 위해 매년 이어지고 있다.
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 씨의 능이다. 1521년(중종 16) 정순왕후가 노산군부인(魯山君夫人)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묘는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댁 해주 정 씨의 집안 묘역인 지금의 자리에 조성하였고, 해주 정 씨 집안에서 제사도 지내주었다. 1698년(숙종 24) 정순왕후로 복위되면서 능의 이름을 사릉이라 하고 묘를 왕릉 제도에 맞게 다시 조성하였다. 이때 사릉 주변에 있던 해주 정 씨 묘역을 옮기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숙종의 명으로 묘들을 그대로 두어 현재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사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을 세웠고, 석양과 석호는 1쌍씩 배치하였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수라간, 수복방, 홍살문 등이 있고, 비각 안에는 ‘조선국 정순왕후 사릉(朝鮮國 定順王后 思陵)’이라고 새겨진 표석이 있다.
홍릉은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과 그의 부인인 명성황후의 무덤이다. 고종은 재위기간 중에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지 못하고, 내부에서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을 겪었다.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비운의 왕비이다. 명성황후의 무덤은 처음에 청량리에 있었으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 하여 고종의 무덤에 합장하였다. 광무 원년(1897) 대한제국 선포로 홍릉은 지금까지의 무덤 제도와 다르게 명나라 태조 효릉의 무덤 제도와 조선왕릉의 제도를 결합하였다. 유릉은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의 무덤이다. 조선왕릉 중 한 봉우리에 3개의 방을 만든 동봉삼실릉은 유릉뿐이다. 홍릉과 유릉은 철종 이전의 무덤과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종을 황제로 칭하게 됨으로 제릉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서 석물의 규모나 종류가 달라졌다. 2개의 무덤을 하나로 묶기 위해 외곽으로 담장을 설치하였으며, 양릉 중간에 돌로 만든 연못을 두었다.
소요시간
1일
코스거리
63.48km
테마
자유여행
후기
소요시간
1일
코스거리
63.48km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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